
지난해 만성질환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84.5%를 차지하는 90조6,000억원에 달하며 매년 8% 이상 증가한다(질병관리청). 이는 고령화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 대책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었다. 수요가 늘어나니 공급을 늘리겠다는 단순한 접근은 건강보험재정 고갈을 앞당길 뿐이다.
더구나 지난 2024년 2월 '의료계엄' 이후 각종 땜질 처방은 건강보험 낭비를 조장해 건강보험재정 적자전환 시점을 2026년에서 2025년으로,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2030년에서 2028년으로 앞당겼다. 향후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현행 대비 약 32조2,000억 원 증가한다고 한다(국회예산정책처).
건강보험재정이 건실하게 유지돼야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도 지속가능하다. 그렇다면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공급(의사 수)을 늘리는 대신, 수요 증가의 주요 원인인 만성질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진정한 ‘의료개혁’ 아닐까.
만성질환 관리는 단순한 진단과 처방만이 아닌, 생활습관 개선이 동반됐을 때 올바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중증질환을 주로 담당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일차의료의 동네의원, 단골의사가 이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까운 의료기
관에서 충분히 돌봄과 만성질환 관리를 받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한다면, 국민의 건강수준은 상승하고 건강보험재정 낭비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낮은 진찰료와 건강증진, 질환 예방활동에 대한 보상 결핍은 일차의료기관이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들여 환자를 돌보기 어렵게 한다. 1만여가지에 달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수가를 부여하며 기본 진찰료는 낮은 현재의 체계는 수가가 책정되지 않은 행위는 피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가 책정된 의료행위를 더 많이 하게 되는 왜곡을 초래한다. 이러한 수가 체계는 의료기관이 건강증진을 위한 예방 중심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게 하며, 질병 발생 후의 치료에 진료의 중심을 두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해서는 일차의료 중심으로의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동네의원 의사가 그 지역 커뮤니티 케어의 리더가 되는 것은 어떨까. 단독 개원의 경우 지역 지원센터의 간호사, 영양사, 운동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그룹 개원은 독자적인 케어센터 마련이 가능하다. 발전하는 IT 기술을 이용한 원격모니터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의 지역기반 환자중심 일차의료 개발센터 시범사업이 그 예다.
취약지의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건(지)소나 의료원, 보건의료원 등 공공기관(평창군 보건의료원의 만성질환 관리 사업 등), 권역책임의료기관인 대학병원(강원대병원 원케어센터 등)과의 협업 등을 통해 공공보건의료정책사업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상생을 추구할 수도 있다.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누가’ 보다는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누가 주도하는 일이든, 일차의료와 지역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통합해 우리 의료를 살리자. 이를 위해서는 수가체계 또한 큰 변화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의료 생태계의 근간인 일차의료 강화는 뒷전으로 하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에만 속도를 내며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 감소, 중증질환 중심으로의 구조 전환은 정부가 어거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일차, 지역의료에서 충분한 돌봄과 만성질환 관리가 선행된다면 자연스럽게 발생할 현상이다.
정부가 정책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은 일차의료가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를 개편하고 일차-지역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 간 네트워킹을 권장하며 환자 자의에 의한 상급종합병원 방문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보건의료인력 구조 조정만 초래할 뿐, 우리나라 의료를 살리거나 의료비용 증가를 막는 데에 기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성질환 진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고갈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보다 나은 건강수준을 목표로 하는 제대로 된 보상으로 우리 의료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대 증원,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 땜질처방과 허울좋은 구호는 이제 멈추고, 일차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 전환으로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정립하고 우리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다함께, 새롭게, 힘차게! 경청하고 책임지는 의협 회장"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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