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상황이 8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열린 첫 의정토론회에 양측의 입장이 팽팽했다. 대통령실은 늘어나는 고령화 인구 수요를 근거로 증원은 필수라는 입장인 반면, 의대 교수 측은 의사가 늘어도 지역에는 가지 않는다며 오히려 의료비 지출만 늘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토론 과정에선 다소 험한 말과 고성이 나왔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10일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 홀에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연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서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내놓은 숫자"라며 "최소 4000명 이상 증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고, 의사 면허 부여와 활동까지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체계를 가진 우리나라는 장래인구 추계와 같은 기초 데이터를 토대로 의사 인력의 수급량을 매우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에서 2035년에는 약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며 "이 연구들에서 몇 가지 비현실적 가정들까지 보완해보니 부족한 의사수는 1만명이 아니라, 2배 이상으로 늘어나 사실상 (매년) 4000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장 수석은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지난 2023년 1월부터 공식화했고, 법정의사단체인 의사협회 등과 별도의 협의체를 만들어 증원 문제만 37차례 협의했다"며 "의료계의 여러 단체에 적정 증원 규모를 묻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종합병원협의회만이 3000명 증원이 적정하다는 답을 주셨다"고 설명했다.
장 수석 발언 도중 청중석에서 고성이 흘러나와 발언이 끊기기도 했다. 한 의대교수는 "2000명이 늘어나면 무슨 과가 몇 명이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장 수석이 의료계에서 적정 증원 규모에 관해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할 때는 "그건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장 수석은 "발제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집단 행동을 거론하며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라며 "하지만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앞으로 만성 질환 2개 이상을 가진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명씩 늘어나 의사 손길이 더 필요해지고, 의사의 사회·경제적 처우는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2030년 의료비는 한국 국내총생산(
GDP)의 16%로, 현재 건강보험료의 1.6배를 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GDP 대비 의료 비용이 늘어나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홍석철 서울대 교수의 연구 자료를 인용해 "25∼64세 인구의 연간 건강보험 추가 부담액은 2030년에 60만원, 2040년에 136만원, 2050년에 201만원으로 예상한다"며 "급증하는 의료 비용과 함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의료 소멸이 한국의료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서울에서는 늘었지만, 충남이나 경북 등 지역에서는 늘지 않았다"며 "(의사 증원보다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가게 해주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은진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도 "과도한 개혁 조치나 급진적인 변화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국민, 정부, 의료계가 한 팀이 돼 신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논의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수석은 이날 현재 진행중인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을 두고도 "권리가 아니다"고도 지적했다. 장 수석은 "고등교육 법령상 휴학은 일종의 교육과정에 들어가기로 등록을 하고 그 안에 교육을 받기로 한 학생이 불가피하게 개인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어떤 사유가 생겼을 때 이를 승인을 해주는 게 휴학"이라고 설명했다. 고등교육법 제23조의4(휴학)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병역법,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 요양, 만 8세 이하(취학 중인 경우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를 말한다)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필요하거나 여학생이 임신 또는 출산하게 된 때, 그 밖에 학칙으로 정하는 사유로 휴학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토론 현장에선 의사 가운을 작용한 남성이 "휴학을 정부가 승인하냐"고 따져 물었고, 장 수석은 "저희가 생각하는 휴학은, 지금 의대생들이 내는 휴학은 휴학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남성은 "네가 얘기하면 법이 맞는 것인가"라고 반발했다.
한편, 이날 토론은 서울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통령실에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비대위 측에서는 강희경·하은진 서울의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김세희·강민성기자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과 강희경 서울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열린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